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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 내게 말하네

12월이 내게 말하네 초암 나 상국 마지막 가랑잎이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혼신의 힘으로 매달려 바람에 펄럭이듯 마지막 달력의 숫자들도 자꾸만 눈을 붙잡고 매달리네 새 달력을 걸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마지막 달력 12월이 내게 말하네 그동안 뭘 했냐고 뭘 했는지 아냐고 하루하루의 삶이 힘들더라도 최선을 다 했을 때 후회를 덜 하지만 목표를 상실했을 때 새로 시작한다는 게 바람 앞의 촛불보다도 더 불안하다는 걸 이제는 알겠느냐고 12월이 내게 말하네 시작이 중요하면 그만큼 끝맺음도 중요하다고

2024.12.03

첫눈

첫눈 초암 나 상국 목 빼고 기다리는 아기의 첫 울음소리 같다 어둠의 긴 동굴을 빠져나와 눈감고 맞이한 세상 첫울음을 터뜨리고 안긴 품속 포근하고 따뜻했다 차가운 바람에 마지막 잎새를 떨궈낸 나뭇가지에 하얀 꽃이 눈부시게 피었다어제 진종일 비가 오다가다 하더니밤늦게까지 비가 내렸다.새벽 2시쯤엔 비가 눈으로 바뀌어 내렸다.아침에 일어나 현관문을 열고 나가보니 눈이 계속내리고 있었고눈도 제법 쌓여있었다.젊은날에 첫눈이 내리는 날 만나자던 약속도 낭만도 다 사라지고 없지만 그래도 첫눈은 왠지 마음이 설레인다.눈이 내리고 나면 길은 미끄럽고 눈이 녹으면 길이 질퍽거려서 눈이 오는 것 보다 비가 내리는게 낫다고들 말을 하지만 그래도 설레임으로 첫눈이 언제올까 기다리기도 한다.눈이나 비를 좋아하는 나첫눈이 내린오..

2024.11.27

밤비는 내리는데

밤비는 내리는데 초암 나 상국 가을비 인지 겨울비 인지 계절을 알 수 없는 애매한 비가 진종일 내린다 세상은 고요 속에 잠겼고 달도 별도 뜨지 않는 밤은 빗소리만이 시계불알 소리처럼 어둠을 가르며 들린다 은은한 차향을 맡으며 창가에 서서 보이지 않는 산을 바라보며 깊은 시름 속으로 빠져든다 이슬비에 옷 젖듯 스멀스멀 가슴속 파고드는 그 무언가에 괜스레 눈가가 촉촉하다

2024.11.26

벽난로

벽난로 초암 나 상국 그대를 볼 수 없음에 괜스레 허전하고 쓸쓸함에 한기마저도 온몸에 깊숙이 파고든다 그대를 보고품에 멍하게 바라본 하늘 우중충 하던 하늘에서 흰 눈이 서리서리 내린다 벽난로에 마른 장작 넣어 불을 지펴보지만 뜨겁게 달궈진 따뜻함 보다는 메마르고 허기진 마음에 자꾸만 밖을 내어다 보지만 하얗게 쌓인 눈에 그대 떠나간 길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돌아 올 길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보고 싶다 그립다는 기나긴 기다림도 깊은 우물에 빠진 듯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2024.11.22

검은 세상 눈이라도 내렸으면

검은 세상 눈이라도 내렸으면 초암 나 상국 낙엽 떨궈낸 나무사이로 협잡꾼들이 무슨 음모라도 꾸미는 듯 촛불아래 바람이듯 이리저리 몰려다니더니 우중충하던 하늘이 골목골목마다 낮게 내려앉는다 이런 날에는 눈이라도 내려서 어두운 세상을 온통 하얗게 뒤덮었으면 좋으련만 세상은 세뇌당한 듯 하지만 그저 진실 앞에 허기진 마음은 자꾸만 창가를 서성인다

2024.11.21

내 마음 아린 곳에 그대 있어

내 마음 아린 곳에 그대 있어 초암 나 상국 하얀 눈이 쌓인 벌거숭이 산이 눈부시듯 스쳐 지나가는 바람소리에도 그대 오는 소리일 것만 같아 천지사방 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은 공허함뿐 오랜 기다리고 기다림에 지칠 법도 한데 그리움은 식을 줄 모르고 그대를 생각하면 할수록 괜스레 가슴이 아려옴은 아직도 그대만을 사랑함일지리라 가슴에 이는 바람은 마르지 않는 속울음의 눈물

2024.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