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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며

산을 오르며 초암 나 상국이른 아침앞도 거의 보이지 않는길을 나서며안개바다 건너노를 젖듯 촉수를 더듬 더듬 더듬어 찾아든산을 오르며숨이 턱끝까지 가득 차오르지만어느샌가 걷힌 안개바다는 오간데 없고신선하고 맑은 공기가턱까지 차오르던숨소리를 폐부 깊숙이차분하게 가라앉힌다공해와 오염으로부터멀리 아주 멀리 떠나와 신계에 들은 듯깊은 산 속은 천국만 같아라*신계:신들이 사는 신성한 곳

2026.03.28

새벽달

새벽달 초암 나 상국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길게 늘어선 산골마을의 밤은 깊어만 가고 밤 되어 오가는 이도 없고 뜨문뜨문 지나가는 차량을 비추는 희미한 가로등불빛 고요보다 적막하기만 하였다 밭고랑 만드느라 노동으로 지친 몸을 뉘었지만 잠은 쉬 오지 않고 붉게 뜨겁게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의 열기에 멍 때리다가 문득 창 밖을 내어다 보니 고요하게 빛나는 수많은 별들 아무런 말은 없었지만 할 말이 많은 듯 물끄러미 넌지시 내려다본다 어디선가 닭의 회치는 소리 여명이 밝아오는 시간 새벽달이 늘 가슴속으로만 그리워하는 그리운 이의 예쁜 얼굴만 같다

2026.03.14

삼월에 내리는 봄비

삼월에 내리는 봄비 초암 나 상국 아침부터 창밖 저 먼 산 메마른 나무가지가 내리는 비에 두 팔 벌려서 흠뻑 젖고 있다 대체공휴일인 3월 2일 뭐가 저리도 급한지 사고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지 쌩쌩 내달리는 차량 위에도 차가운 비가 저렇게 내린다 생명이 다 한걸 아는지 멀리 떠나가는 겨울과 이별을 하는 듯 봄비가 저렇게 내리나 보다 아파트 복도에 있는 겨울 내내 물 한 모금도 받아먹지 못한 화분에서는 봄이 왔다고 참당귀가 보라빛 새싹을 올리며 봄인사를 넙죽 건넨다

2026.03.02

제2회 어르신 짧은 시 공모전 수상 자품

제2회 어르신 짧은 시 공모전 수상 작품책제목:꽃은 오래 머물지 않아서 아름답다ㅇ 8500여편 중 뽑힌107편 중 일부입니다.ㅇ 저녁노을저렇게 지는 거였구나한세상 뜨겁게 불태우다금빛으로 저무는 거였구나 [대상]《이생문》ㅇ 겸손굳이 겸손하려 애쓰지 마라.나이 들면허리가 알아서 숙여진다. 《김주식》ㅇ 옹고집옹고집 늙은이라 하지마안 들려서 그래 《박광수》ㅇ 봄꽃필 때는 저마다 더디 오더니질 때는 하르르 몰려가더라 [우수상] 《김용훈》ㅇ 동창 모임한 친구가 소풍을 떠나이 빠진 것처럼 빈자리가 생겼다임플란트로도 틀나로도채울 수 없는 빈자리 [우수상] 《양향숙》ㅇ 이명악보가 없는 나의 노래외롭지 말라고 같이 울어주는나만 아는 나의 동반자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다. 《박..

2026.03.02

어머님의 겨울

어머님의 겨울 초암 나 상국 그 옛날 내 어린 시절에 춥고 배고팠던 보릿고개 그 긴긴 겨울날은 어쩌면 어쩌면 어머님에게는 또다른생지옥이었는지도 모른다 고슴도치처럼 곧추선 가시보다도 더모진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는 깜도 못되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허구한 날 아궁이 앞에서 타닥타닥 뜨겁게 타오르는 불빛보다도 더 새까맣게 속이 타들어가는 숯검댕이 같은 눈물을 주르륵 훌리면서도 말없이 묵묵히 부엌데기의 삶을 사셨다 어느 하루라도 마음 편히 쉴 날이 없었다 겨울이면 사랑방은 또 다른별천지 같은 늘 동네마당 같았다 그 많은 객식구들의 뒤치다꺼리는 늘 어머니의 몫이었다 없는 살림임에도 손이 크셨는지꽁꽁꽁 언 손으로살갗이 다 부르트고 짓물러터지도록도토리묵 메밀묵 창포묵 두부 무조청 옥수수..

2026.02.13

낙숫물소리(동시)

낙숫물소리(동시) 나 상국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유리창을 눈부시게 비추던 햇빛이 흔들리더니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는지 눈물이 뚝 뚝 뚝 떨어진다 비가 내리는 것도 아닌데 동파방지를 위해서 틀어놓은 수돗물 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소리였다 더 높고 더 깊고 단단한 돌덩이를 파고들어 천년의 세월 동안 돌구덩이를 파낸 차가운 소리다 눈 덮인 지붕의 눈이 살살 녹으며 흘러내리다 처마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다시 얼었던 고드름이 바람과 햇빛에 부딪쳐 상처 난 눈물을 훌리는 하울링 소리였다

2026.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