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짖궂은 인연

짓궂은 인연 초암 나 상국 때로는 그냥 불어오는 바람에도 마음이 아프다 파아란 하늘을 보며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르는 것처럼 스쳐가는 옷깃도 인연이라는데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더 집요하게 파고드는 그 마음은 무얼까 애꿎은 하소연에 긴 밤은 깊어만 가는데 그냥 맘 놓고 밀어만 낼 수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타인처럼 살수만 있었으면 좋으련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 마음은 무얼까 넋두리는 밤새워 끝이 없다 잠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

2023.03.13

3.1 절 냉이

3.1 절 냉이 초암 나 상국 물 오르는 버드나무 가지 끝에 봄바람이 푸르스름하게 흔들린다 폐교된 대광중학교 언덕을 오르면 동지섣달 삭풍에 꽁꽁꽁 언 채 바짝 움츠렸었던 콩밭 언저리 어디쯤 드디어 땅에도 산통이 왔는지 양수가 터져서 촉촉이 젖는다 박힌 조막돌 슬쩍 밀어내며 여린 손 뻗어보지만 아직은 철 이른 탓에 옷깃을 파고들며 살을 에는 칼바람에 주눅 들었던 어깨를 펴고 기지개를 켠다

2023.03.02